DAEMULLIM은 성경의 옛 가르침을 보존하는 작품들을 만듭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사도들로부터 여러 세대를 거쳐 전달되었기 때문에 짧게 보아도 이천 년이며, 그 내용은 인간과 우주의 창조, 심지어 창세 이전의 영원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성경의 가르침은 아주 오래되고 변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DAEMULLIM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작품들을 만드는 셈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왜 새롭지 않은 작품들을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할 것 같네요. 사람들은 보통 새로운 것을 원하니까요. 저희는 이 질문에 대해서 역설적인 대답을 하려 합니다. 오래된 가르침이야말로 오히려 새롭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그러한 성경의 오래된 가르침을 접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나 유튜브에서나 교회들에서는 새로운 듯 보이는 여러 가르침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롭고 다양한 가르침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경의 옛 가르침에서 떠났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옛 가르침이 상실된 지금 시대의 독자들에게는 오래된 가르침이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그토록 새로울 것이 없는 옛 가르침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옛 가르침을 만나게 되면 한동안 충격 속에서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토록 오래된 가르침을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다음에는 여태껏 새롭게 느껴졌던 오늘날의 가르침들 이 교회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래된 오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다음에는 ‘옛 것의 새로움’으로 인해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DAEMULLIM이 바라는 바가 단순히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서 개혁과 회심,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옛 가르침으로 인한 충격 가운데에 계속 말씀을 상고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영적 각성이 일어납니다. 은혜의 효과로 인하여서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돌이켜서, 진리의 가르침을 생명 다해 추구하게 됩니다. 오류가 가득한 시대에서도, 옛 가르침을 듣게 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옛 가르침을 진정으로 만나서 새로워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내게 그 가르침을 전해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되며, 또한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전해준 사람과 내가 전해줄 사람이 함께 보입니다. 마치 학창시절 운동회에서 했던 이어달리기처럼, 내 이전 주자와 다음 주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야는 점차 넓어집니다. 내게 진리를 가르쳐준 사람에게도 그것을 전달해 준 사람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까지 전해지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나타납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영적 운동이었습니다. 흔히 종교개혁을 시작한 인물로서 1517년에 비텐베르크 성당의 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마르틴 루터(1483~1546년)를 떠올릴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사실 루터로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루터 이전부터 있었던 개혁의 움직임이 루터 시대에 이르러 폭발했을 뿐입니다. 예컨대 루터는 약 100년 정도 앞선 시대에 진리를 사수하다가 화형을 당하였던 보헤미아의 얀 후스(1372~1415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후스는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1320s~1384년)에게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수 받았습니다. 위클리프 이전에는 월터 롤라드(?~1320년), 피에르 발도(1135-1217년?), 피에르 브뤼(?~1131년),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러 발도인들(Waldenses)이 있습니다. 근원을 찾아 내려가다 보면 교부들을 발견하고 결국 사도들에게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여러 세대가 핍박과 환난을 맞서서 진리의 가르침을 사수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에도 말씀을 사수하는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으며, 그들을 통하여서 옛 가르침은 대를 이어서 전해졌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은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조들이 진리를 사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 진리가 그들을 사수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친히 사수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서 당신의 교회를 친히 보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신구약 성경으로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여서 보존하신 것처럼, 교회사 속에서도 진리의 가르침을 여러 세대를 거쳐서 친히 보존되게 하신 것입니다.
구속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우리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이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바른 가르침을 사수하여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대물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방구석에서도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옷을 입고 등장하는 수많은 오류들이 혼합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의 교인들은 설령 바른 가르침을 듣고자 애를 쓸지라도 무엇이 진정 성경의 가르침인지 분별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입니다. 혼탁한 시대 에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류와 이단에 빠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오류 들을 분별하고 오래된 성경적 진리를 명확하게 가르치는 작품들을 만들고 소개하며 보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물림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백성들과 교회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DAEMULLIM은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은혜 덕택에 옛 가르침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는 작품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물론 저희가 만드는 모든 작품들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과 교회를 보존하신 삼위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며, 대물림의 은혜를 입은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것입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